기사날짜 : 2017-03-09
얼마 전, GPM의 박성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몬스터 VR'이라는 이름으로 큐브형, 키트형 콘텐츠를 구상한 인물. 그와의 대화는 꽤 즐거운 자리였다. VR 산업에 대한 식견이 있었으며, 어떻게 산업을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그만의 해답이 있었다.
VR 시장에서 성공하는 방법이라는 질문에 현재는 '정답'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비교적 정답에 근접해 있었고, 이미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기업 대 소비자가 아닌, 기업 대 기업으로 VR 시장을 그려나가는 박성준 대표. VR EXPO의 첫 날, 연단에 선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저희도 게임을 만들고 있었는데, 이걸 그냥 소비자에게 팔자니 답이 없더라고요."
박성준 대표 또한 개발자 출신이자, 개발사의 대표다. 하지만 'VR 게임'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금방 한계가 찾아왔다. 기기 보급률의 문제였다.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주변에 개인용 VR 장비를 구축한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PC와 장비 가격만 해도 3백만 원에 달한다. 가격만 문제랴. 돈이 있어도 공간이 없으면 룸스케일을 활용하지 못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결국, 박성준 대표는 시선을 돌렸다. B2B 방식. 업체와 업체가 직접 연계해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이다. 과거, 그는 개발자의 시선에서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었고, 유니티 엔진을 국내에 들여왔던바 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개발자,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니 답은 금방 나왔다.
최종 형태는 개인 소비자가 주축이 되는 시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상황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도 길고, 걸리는 세월도 길다.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VR의 대중화'였다. 더욱 많은 이들이 VR을 접하고, VR을 알며, 동시에 VR을 좋아해야 한다. 한편,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접근성'이었다. 쉽게 VR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대중화'가 해답이라는 건 사실 박성준 대표만의 의견은 아니다. 수많은 VR 업계인들이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대중화'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여기에 그는 자신만의 합리적인 조건을 덧붙였다. VR을 새로운 오프라인 놀이 문화의 하나로 생각해 누구나 쉽게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후, 그는 '시스템'을 짜기 시작했다. 업체와 업체 간에 이뤄지는 연계이다 보니 어느 한 쪽이 손해를 보아서도 안 되고, 어느 한 쪽이 수익을 독점해서도 안 된다. 기본은 '몬스터 VR'과 '점주'다. 몬스터 VR이 서비스를 제공하면, 점주는 그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한다. 점주는 그 과정에서 차익을 얻고, 몬스터 VR측은 점주가 지급하는 요금을 얻는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다. 몬스터 VR과 연계되는 개발사들은 몬스터 VR을 통해 고객들에게 콘텐츠를 제공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콘텐츠 이용 시간을 토대로 추가 수익을 배분받는다. 요금을 지불하고 계산하는 이른바 '빌링 시스템'은 이미 유명한 페이먼트 솔루션 업체인 '페이레터'와 손을 잡아 해결했다. 하드웨어 보급과 유지 보수는 'HTC VIVE'의 국내 유통 총판인 '제이씨현'이 담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PC방 시스템 업체인 '미디어웹'과 숙박업소 중개 서비스인 '야놀자'도 손을 잡았다.
그렇게 '몬스터 VR'이라는 시스템이 전국 곳곳으로 퍼질 수 있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식만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박성준 대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했다. 바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다.
다양한 업체, 그리고 가맹점주들이 손을 잡고 하는 사업인 만큼, 시스템의 통일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비 온 뒤 잡초가 자라듯 중구난방으로 구성된 VR 콘텐츠의 시스템을 손보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매니지먼트 소프트웨어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몬스터 VR'만의 운영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졌다. 콘텐츠 개발사들은 평균 이용 시간, 콘텐츠 순위 등을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고, 이 데이터는 곧 피드백이 되어 전체적인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인다. 모든 콘텐츠는 튜토리얼과 메뉴얼을 포함한 플랫폼 안에서 구동되기 때문에 한 번만 해 보면 그다음부터는 별도의 설명이 없이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이런 연구 과정을 통해 '하드웨어'도 만들어졌다. 몬스터 VR 이전, 대부분의 VR 체험존은 가지각색 자신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어떤 곳은 검은 천으로 대충 둘러둔 공간만 존재했고, 또 어떤 공간은 가벽을 세워 부스 형태로 꾸며졌다. 업장의 형태가 다들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몬스터 VR은 'VR 큐브'라는 아이템을 개발해 이를 규격화했다. 사방 3미터 가량의 공간. 일정한 크기로 이뤄진 큐브는 외부와 차단되는 독립 공간이자, 마치 노래방의 그것처럼 소규모 그룹이 들어가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다소 심심할 수 있는 비체험자들을 위해 한쪽 벽면은 화면이 되었고, TV로 구성되었던 이 화면은 더욱 큰 박진감과 현장감을 위해 천장에 설치된 반사 굴절형 프로젝터로 대체되었다. VR 큐브 내에서는 화면 앞까지 다가가도 그림자가 일지 않게끔 말이다.
'야놀자'와의 계약을 통해 진행된 숙박업소와 VR의 연계는 VR 큐브가 활약하기 힘든 분야였다. 몬스터 VR은 이 문제를 '큐브'가 아닌 내부 시스템만 가져와 '몬스터 키트'로 구분 지음으로써 간단히 해결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리고 산업을 함께 굴릴 모든 톱니바퀴가 갖춰진 것이다.
박성준 대표가 그리는 그림의 밑바탕은 완성되었다. 마치 연필만 가지고 그린 스케치처럼, 그가 구상한 구도와 소재들이 도화지 곳곳에 알맞게 배치되었다. 이제 채색의 단계다. 진짜로 고객들이 'VR 큐브'라는 문화 공간을 받아들이고, 즐기게 될 것인가. 그 과정이 아마 채색의 단계가 될 거다. 박성준 대표는 얼마 전, 홍대 근처에서 오픈한 매장이 유의미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하나의 색은 제대로 칠해진 셈이다.
스케치가 아무리 좋아도 채색이 엉망이면 완성된 그림으로 남을 수 없다. '몬스터 VR'은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연필이 들려 있던 박성준 대표의 손에는 어느덧 붓이 들려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지켜보는 것이다. 그의 왼손에 들린 팔레트에 얼마나 많은 색상이 생겨날지, 모두가 함께 바라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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